너의 모든 순간들을

 나는 카페에서 온 힘을 다해 이영이를 달래 주고 있었다.
 “미안해, 이영아! 저번에 워낙 급해서 그랬어. 그때 마침 내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을 본다고 설명한 뒤였잖니. 그러니까 한 번만 용서해 줘. 응? 부탁이야.”
 “흥,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그렇게 가 버리는 게 어디 있어?”
 “내가 뭘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겠니? 노래? 춤?”
 나는 온갖 아양을 떨었다.
 “알았어. 대신……. 오빠가 나 버리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가 버리기 전에 내가 오빠한테 무슨 말했는지 기억나?”
 나는 그윽한 눈빛으로 이영이의 손을 잡았다. 이영이는 고개를 돌리며 부끄러워했다.
 “뭐야……. 이런 건 또 기억하네.”
 그때였다.
 “어? 보, 보라야!”
 테이블 곁으로 보라가 걸어왔다. 손에 커피를 든 채 두리번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명백아!”
 “보라야, 여긴 내 친구? 동생? 이영이야. 이영아, 여긴 내 친구 보라야……. 인사들 해.”
 이영이는 서둘러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보라와 이영이는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보라는 발길을 돌렸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재밌게 놀아.”
 “아니, 원래 어디 앉으려고 했던 거 아냐? 우리 때문에 갈 필요 없는데. 여기 같이 앉아서 얘기해도 되고!”
 “아냐, 어차피 금방 나가 봐야 돼. 가게에 인사도 해야 되고…….”
 “인사?”
 보라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갈게. 잘 놀아. 놀다 가요!”
 “아, 네! 안녕히 가세요!”
 보라는 꼭 마지막 모습인 거처럼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보라가 떠나자 이영이는 추궁하듯 질문을 던졌다.
 “오빠, 근데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야? 응? 빨리 말해!”

 어느덧 추운 겨울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춥잖아! 대체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흐르는 거야! 아직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그렇다고 상황이 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호태가 퇴원했다.
 퇴원한지도 며칠이 지났으니까 지금쯤이면 병문안 갔을 때보다 훨씬 더 건강해져 있겠지. 아무쪼록 집에서 요양 잘해라!
 나에게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더 이상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 많던 사람들, 자살을 기도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이제 이것도 끝이구나. 영원할 것만 같더니……. 끝나 버렸구나. 잠깐, 지금 내가 왜 아쉬워하고 있는 거냐!

 전화벨이 울렸다. 보라였다! 나는 서둘러 우당탕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보라야! 너 왜 갑자기 잠수타고 그래! 혹시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 응? 삐치거나 그런 거야?”
 전화 속 목소리는 한없이 차분했다.
 “명백아, 나 떠나.”

 부릉부릉! 나는 바이크에 힘찬 시동을 걸고 곧바로 출발했다. 무한정 액셀을 밟았다. 인천 국제공항 고속 도로에 진입! 젠장! 큰일이다. 시간이 너무 없잖아! 나는 고속 도로를 질주하며 조금 전 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떠난다고? 어디로?’
 ‘외국.’
 ‘오잉? 외국 어디?’
 ‘유럽.’
 ‘갑자기 웬 유럽이래! 언제 가는데?’
 ‘오늘. 곧 출발이야.’
 ‘뭐! 지금 간다고? 말도 안 돼. 당장 공항으로 갈게!’
 ‘아냐! 오지 마. 안 보고 가려고 일부러 지금 전화하는 거야.’
 ‘싫어! 갈 거야! 내 마음이야!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명백아!’
 ‘응?’
 ‘미안해.’
 ‘뭐가?’
 ‘아무 것도 아냐.’
 ‘보라야…….’
 ‘응?’
 ‘언젠가는 돌아올 거지?’

 공항에 도착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라는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황급히 항공사 발권 데스크로 달려가 생떼를 썼다.
 “저기요! 급해서 그런데! 5시 30분, 프랑스 파리 가는 항공기, 이륙했나요?”
 “네, 방금 이륙했습니다.”
 나는 맥이 탁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후유.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창가로 다가섰다. 새하얀 비행기 한 대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난 호수에 뛰어들어 그녀를 구했던 순간, 식탁을 치며 일어나 외쳤던 순간을 떠올렸다.
 ‘잘 가.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을, 너의 모든 순간들을 잊지 않을게.’
 노을빛이 쏟아졌다. 창문에 얼굴이 비쳤다. 나는 갑작스레 찾아온 비극에도 대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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