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해지고 싶어요

자신감은 섹시하다. 그러나 허세에서 비롯한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하는데, 금세 바닥이 나거나 기민한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기 때문이다. 허장성세가 많은 사람들의 특징. 열등감, 열패감 같은 것들이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지나치게 큰 목표를 설정하며, 높은 지향점과 남루하고 비루한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며 왔다 갔다 한다.

원론적으로 허세라는 건 결핍된 부분,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시도에 가깝다. 가진 게 50이면 70이나 80을 말하는 건데, 이것도 다 습관이고 버릇이다. 이들은 스스로 자존감이 높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공백의 근거에 연유한 자존감은 설마 그럴까 싶은 작디작은 사건에도 허망하게 허물어지곤 한다.

외형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솔직함’에서 비롯한 ‘자신감’보다 섹시한 건 없다. 이건 사실 방편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그 사람 자체, 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 자체를 규정하는 정체성이라고. 이것도 할 수 있어, 저것도 할 수 있어 식의 자신감을 내비칠 때보다, 이건 할 수 있어, 저건 못해. 근데 씨발, 상관없잖아 식의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통념 이상의 솔직함을 내비칠 때가 가장 더티 섹시.

솔직하게 말했다 지질하게 보면 어떡하지? 지질하게 보면 지질하게 본 거지 뭐. 일시적으로 찌질이, 찐따, 쪼다가 되는 거지 뭐. 싫다. 근데 그게 허세 부리다 들켜 속생각으로, 뒷담화로 씹히거나 까이고, 매력 반감을 당하는 거보다 낫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찌질함’은 남들에게 옹색함을 드러내는 순간에 찾아오는 게 아니라 옹색함을 들킬까 초조해하고 조마조마해하는 걸 드러내는 순간에 찾아온다. 차라리 당당하게 나 거지다, 외치는 게 소심하게 돈 계산하는 거 다 티 나는데 본인만 모르고 있는 거보다 낫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다.

오늘 당장, 내일 당장 사람들을 만날 때 자신이 느끼고 있는 정도, 있는 그대로 말해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50이 있으면 50을 말해. 처음엔 익숙지 않아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 있는 수준보다 낮춰 말해 보시길. 예를 들어, 50이 있어. 그럼 30만 말해. 대화가 지속되다 보면 이게 50까지 채워질 수도, 채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상관없다. 이게 반복되다 보면 아, 이래도 되는 구나, 별문제 없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신에게 설정된 과도하게 높았던 목표치를 낮출 수 있게 된다. 섹시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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