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ENSION

고텐션

느슨하게 살고 싶은데

‘애쓴다’라는 말은 다분히 일상적이다. 문학적이지도 않고 멋들어지지도 않는다. 말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라고 하는데, 어딘가 왠지 모르게 좀 구슬픈 구석이 있다. ‘노력하다’와는 또 다른 어감이다. 마치 모든 게 결과론인 세상에서 되든 안 되든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바보같이 무던히도 노력하는, 노력할 수밖에 없는, 번영이 아닌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힘쓸 수밖에 없는 사회적 어감을 한 축에 지니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린 모두 애쓰며 산다. 정말 가끔은 나만 왜 이렇게 힘든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착각이다. 사실 근본적으로 속사정을 깊게 따지고 보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과 덜 힘든 사람이 나와 똑같이 힘든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도의 차가 있긴 하겠지만, 저마다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분투하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없는 거 같다. 어떤 때는 정말이지, 느슨하게 살고 싶은데 도저히 못 살겠다. 도무지 못 살겠다. (정신적으로 느슨하게 살고 싶은데 신체적으로 자꾸 방광만 느슨해진다).

실제로 뉴스만 봐도 살기 팍팍한 현실이 피부로 스며든다. 다만 한 가지 성찰해 봐야 할 사항은 뉴스 속 불온한 사건의 인물들이 원래부터 악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철학 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는 개념이 있는데, 이 개념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가 어떤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 파탄자가 아닌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높은 자리에 올라 있는 인물의 사회적 물의를 보며 지탄만 할 수 없다. 우리가 그 자리에 올라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면 그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 취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인간 심리의 핵심은 역설이다. 남의 단점을 잘 파악하는 건 너무 잘 알고 있는 내 단점을 상대에게서 발견한 것이며, 상대의 어떤 공격에 쉽사리 반응하거나 반격하는 이유는 실제로 어느 정도 타격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다.

고로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분전하기보다 매력적인 존재가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매력은 상호 작용으로 먹고사는 이 세계에서 상당수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매력적인 존재가 되려면 애쓰지 말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 여러모로 애쓸 수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애쓰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굽실거려서 어떻게든 호감을 사려 하는 행위는 비움을 채움으로, 부족분이나 공백을 메우려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미 자신이 매력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반증할 뿐이다. 갈구하는 자는 매력이 없다. 갈구하지 않는 자는 매력이 있다. (방광이 느슨하면 오줌을 너무 자주 갈구해 매력이 없다).